취향을 위해/책

심신 단련(이슬아 산문집)

글몽인 2021. 11. 23. 14:08

회사에서 짬 날 때마다 전자책으로 이슬아 작가님의 [심신 단련]을 읽었고 지난 주말 수원에 가는 기차 안에서 [깨끗한 존경]을 읽었다. 1주일 만에 이슬아 작가님의 책을 두 권이나 읽을 수 있었던 건 그만큼 그녀의 책이 재밌었고 쉽게 읽히지만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의 시즌 투 버전인 이 책 또한 수수하지만 톡톡 튀는 작가님의 글솜씨가 돋보였다. 어떻게 일기같이 슥슥쓰는데 다양한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통찰하지? 사람에 대해, 사물에 대해, 하물며 자기 자신에 대해 고찰하는 깊이가 남달라서 너무 좋다. 이미지 하나 없는 글인데도 세련됨이 느껴진다.

"계속해서 겸손하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싶어 진다. 내가 모르는 것과 배워야 할 것이 세상천지에 널려있으니까. 편견도 잘 갈고닦고 싶었다. 사실 꽤 많은 편견이 우리를 돕는다. 그러나 어떤 일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판단을 좀 미루고 볼 필요가 있다. 세상이 간단하지 않음으로 편견도 뭉툭해서는 안 된다."
"어디서든 찬물로 세수를 하고 손수건을 꺼내 얼굴의 물기를 닦는 사람들. 어디로든 가고 어디에나 털썩 주저앉을 수 있는 사람들. 인생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음을 잊지 않는 사람들. 커다란 사랑과 증오와 열정과 불안과 조심 없이도 계속 흐르는 사람들. 그런 바깥사람들을 기억하며 외출 준비를 한다."
"그렇게 하루나 이틀을 놀다 헤어지면 반년 넘게 연락하지 않아도 좋았다. 가끔 보고 싶지만, 그냥 그립도록 놔뒀다. 그리움을 그리움으로 두고 싶었다. 매일의 너절한 마음들은 입 밖에 내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가 어느새 까먹어버린 뒤, 다시 김을 만나면 정말로 중요하고 재밌고 슬픈 이야기들만 꺼내고 싶었다. "
"대화에 관하면 나는 민첩한 편이었다. 핑퐁팽퐁의 리듬을 웬만하면 놓치지 않았고 달변가 옆에서도 내 발언의 최소 분량을 챙길 줄 알았다. 반면 그 무렵의 희는 눌변인 편이었고 왠지 집에 들어가는 길에 혼자서 마음속으로 대화를 복기할 것 같았다. 하고 싶은데 타이밍을 놓쳐서 못한 말, 혹은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더 빠르고, 똑똑하게 대신 내뱉던 남의 말, 그런 대화의 복기를 하다가 멍해져서 차를 놓칠지도 몰랐다."

'소심한 사람들의 괴력' 中

"언제부턴가 나는 소심한 사람들의 괴력을 눈치채게 되었다 대범한 사람들이 세계를 들썩들썩 움직이는 동안 소심한 사람들은 주섬주섬 세상을 해석한다. 살아남기 위해 예민해질 도리밖에 없는 초식동물처럼 그들은 누가 힘을 가졌는지 계절이 언제쯤 변하는지 민첩하고 정확하게 읽어낸다. 미미한 자극에 큰 충격을 받고 사소한 현상에 노심초사하는 그들의 인생은 남보다 느리게 흐른다. (...) 그들은 더디게 살기 때문에 삶을 사는 동시에 재구성한다. 목소리 큰 당신이 휘어잡았다고 생각하는 어젯밤 술자리에서 벽지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듣기만 하던 동료가 있었던가. 그가 잠들기 전 떠올린 스토리 속에서 당신은 놀림감이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세계의 평형을 유지하는 메커니즘 중 하나라고 판명돼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씨네 21 김혜리 기차

작가님의 친구이자 소심한 사람인 희가 좋았다. 우리 집 희도 한 소심이 하는데 위 구절을 찍어 보내주니 아주 좋아했다. 작가님의 말처럼 어디서든 찬물로 세수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나는 언제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몰라 미리미리 준비하는 철저한 사람에 가깝지만 가벼운 가방을 들고 갑자기 닥친 상황에도 너털웃음 지으며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하는 작가의 수필을 읽으면 내적 친밀감이 상승한다. 그래서 실제 친구들보다 책 속 친구들에게 더 자주 다가가고 기댄다, 이슬아 작가님은 나에게 아주 좋은 친구이니 같이 계속해서 겸손하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싶어 지는구먼~    

- 2020년 11월의 나의 리뷰 중

이슬아 작가님의 책은 [일간 이슬아 수필집], [심신 단련], [깨끗한 존경]을 읽었고 메일 구독 서비스도 신청해서 매일 글을 받아 읽기도 했다. 처음 작가님의 책을 읽었을 때는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담백한데 가독성이 좋았고 생각할 거리도 척척 던져주는 이 작가의 글솜씨에 감탄했다. 지금 이 시대에 딱 어울리는 사람이랄까?

지금 이슬아 작가님의 친구인 양다솔 작가님의 책을 읽고 있는데 비슷한 느낌이 나서 재밌다. 이런 맛의 에세이는 정말 소중하다. 추가로 개인적으로 자주 읽고 마음에 새기는 작가님의 글을 공유해야겠다. 

언제나 재능 없는 꾸준함의 미덕을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