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위해/책

New Philosopher 뉴 필로소퍼 ㅣVOL. 17 나는 누구인가? Who am I ?

글몽인 2022. 5. 28. 14:43

유일하게 정기 구독하고 있는 잡지가 <뉴필로소퍼>이다.
철학 고전과 잡지 사이의 균형을 잡은 철학지라 재미있게 읽고 있다.
인터뷰가 주인 다른 잡지와 달리, 주제에 맞는 해외의 좋은 글들을 번역하는 형태라 깊이 있는 양질의 글을 읽을 수 있다.

제일 재밌었던 호인 ‘정체성’에 관한 17호를 소개한다.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두 가지 정체성을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동일하고 결코 변하지 않는 동일 정체성이고, 또 하나는 변화하는 와중에도 동일하게 유지되는 자기 정체성이다.
동일 정체성은 우리가 누구이고 신원 서류에 어떻게 기록될지를 규정하는 범주를 의미하므로, 종종 범주적 정체성이라고 불린다.

이에 반해 자기 정체성은 서사적 정체성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설명하는 우리의 이야기로, 어째서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여러모로 다른데도 여전히 동일인인지를 설명해준다. 따라서 서사적 정체성을 보호하려면 신원 서류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사생활 보호와 자기표현의 권리, 즉 우리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이야기할 권리를 갖는다.

-정체성 보호하기 중


20대 초반에 서사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 / 가족, 친구, 선생님이 생각하는 나도 다르고 사람들 앞에서 무수히 다른 자아를 내비치는 나의 모습에도 혼란을 느꼈다.
이제는 모든 모습이 다 나다, 라는 생각으로 나의 서사적 정체성을 정의 내리고 있다.


저널리스트 알레그라 홉스는 “인터넷이 저지른 최악의 죄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실제 대상 그 자체보다 그 대상의 재현을 더 가치 있게 여기도록 만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려고 애써 봤자 헛수고다. 다른 사람들이 보라고 온라인에 올려놓은 것은 무엇이든 본질상 바깥을 향하는 퍼포먼스다.
(…)
가끔 그 여성 요리사를 생각하나.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아마 불안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판타지로 가득한 인스타그램 인생에서 위안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할머니도 생각난다.
할머니는 소셜 미디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셨다. 그 대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셨다. 할머니에 관해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다. 할머니는 행복하셨다.

-소셜 미디어, 경쟁하는 자아들의 전쟁터 중


이제 더 이상 SNS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는 대목에 공감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라고 온라인에 올려놓은 것은 무엇이든 본질상 바깥을 향하는 퍼포먼스다.”
네이버 블로그를 오래 사용했던 사람으로 크게 끄덕였다.
일기와 블로그의 차이는 목격자가 있다, 없다의 차이다. 그리고 이를 아는 이상 나의 태도도 교묘히 달라진다.

순간의 행복을 느끼고 소중히 여기면서도, 소셜 미디어에 올림으로서 공유하고자 하는 욕구를 버리긴 어렵다. 그리고 이웃과 친구들의 반응을 신경 안 쓰는 척 기다린다.
아니 대놓고 기다린다.
블로그 안에서 나는 최대한 솔직하지만, 진정성 있고자 하는 틀을 만들어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잊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관념적인 차원에서 미래의 자기 모습을 자유롭게 상상하며 변화와 성장을 거듭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처럼 망각은 사회 정체성 발달은 물론이고 정치적 의미와도 연관되어 있다.
나는 과거를 뒤로 하고 앞으로 계속 나아감으로써 우리가 사회에 변혁과 변화를 일으키는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망각은 개인적 차원에서도 중요하지만 보다 폭넓은 사회적 차원에서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 망각이 사라진 사회 중


기록해서 기억하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서 ‘망각’이 필요하다는 글을 가장 재밌게 읽었다.


분명한 사실은 동일성이란 다양한 지각들의 속성이 전혀 아니며, 그 지각들을 통합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동일성은 우리가 지각에 부여하는 하나의 성질일 뿐이며, 그 이유는 우리가 지각들을 깊이 생각할 때 상상 속에서 관념들이 연합하기 때문이다.
(…)
즉 인격 동일성에 관한 모든 난해하고 훌륭한 질문들은 결코 해결될 수 없으며, 이는 철학적 난제라기보다 문법적 난제로 간주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동일성은 관념들이 관계에 좌우되며, 이 관계들이 상상의 전이를 용이하게 함으로써 동일성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 관계들과 전이의 용이성은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질 수 있으므로, 우리는 동일성을 부여할 때 시간과 관련해서는 어떤 타당한 기준도 세우지 않는다.

-미로 같은 인경 동일성 중


역시 ‘자아’라는 개념은 이토록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였다.
생각하는 인간이 하는 자아탐구와 자아정체성에 대한 고찰은 철학적으로도, 일상생활에서도 해결할 수 없는 분야일 테다.
하지만 굳이 해결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냥 이를 고려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