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위해/공연

이승윤 콘서트 <도킹>

글몽인 2022. 3. 21. 21:02

* 지극히 주관적인 공연 리뷰입니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간 콘서트는 이승윤 가수의 첫 단독 공연이었다.

사실 오랜 기간 좋아한 역사가 있어야 거금의 공연에 찾아가는 수고를 하는 편이다. (ex. 아이유, 잔나비)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관심을 가진 가수의 공연은 처음 가보았다.

'첫' '단독' 콘서트라는 명칭이 오는 힘이 꽤 커서, 이승윤 가수의 떨리는 첫 시작을 함께 해보는 것도 가치가 있을 거라 여기고 예매했다.


주로 전국투어를 하는 가수가 내가 있는 지역으로 찾아와야지만이 가능했던 콘서트였는데 서울에서 단 2회만 진행하는 공연을 가보다니..
앞으로 올림픽홀에 더 자주 오고 싶다.


입장과 동시에 느낀 이승윤 공연의 특별함은 관중석에 놓여 있는 팬클럽의 응원 지침이었다.
나에게 이승윤이라는 가수는 '하고 싶은 말이 무척이나 많은데 누르고 눌러서 오롯이 가사와 음악으로만 표출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방구석 음악인이라고 지칭하는 자신의 닉네임과 오디션과 라디오에서 내비치는 언변들은 재치 있지만 그만큼 무지하게 생각이 많은 사람이구나,를 느끼게 했다.

생각과 사색만으로도 하루가 훌쩍 지나가는 나 같은 사람이 공연에 가득할 줄 알았는데 내 예상보다 이승윤은 코어 팬클럽 힘이 매우 센, 그리고 연령대가 높은 충성심 강한 팬을 보유한 가수였다. 옷을 맞춰 입은 관객들 틈에 앉아 조금은 어색하지만 색다른 떨림을 가지고 공연을 관람했다.


늘 화려하게 잘 짜인 연극 같은 콘서트를 보아와서 그런가 내 예상보다는 너무 정각에, 빠르게 그리고 소탈하게 오프닝 곡이 시작되어서 처음엔 적잖이 당황했다.

어? 시작한 거야..? 등장한 거야? 노래 부르는 거야?..


스토리가 있는 것도, 무대에 힘이 많이 들어간 것도, 그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서 공연이 이어지는데 뭐랄까.
되게 생경한 경험이었다.

재치 있는 언변으로 관객과 많은 소통을 할 거라 예상했는데 이승윤은 오히려 말을 아끼고 그 시간에 노래를 한 곡 더 불렀다.

불현듯 공연을 자기 음악처럼 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궁금증은 그냥 이승윤의 음악을 들으면 그만이었다.

방구석 음악인이 무대로 나왔고, 커버곡으로 유명세를 탄 오디션 출신자가 앵콜곡(너의 의미, 단 한곡)을 제외한 모든 셋 리스트를 자작곡으로 채우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만 보면 되었다.


적어도 내가 찾아봤던 가사의 비하인드와 창작 과정 등에 대한 소개로 곡들이 진행될 줄 알았지만, 일절 없이 그냥 바로 노래를 불렀고 이렇게 공연은 3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굳이 생각 많은 관객이 개인적으로 의미부여를 하자면, 이승윤은 "노래 들어요! 나의 모든 메시지는 여기 담겨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무대에 그 어떤 큰 변화가 있지는 않았지만 음악과 어우러지는 배경이 마음에 들었다.
시선을 빼앗지 않으면서 조화롭기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이승윤 말을 빌려 '골방 노가다'에 힘써준 모든 이들의 노고가 빛나 보였다.

밴드 세션 사운드도 흥이 절로 나게 해서 행복한 흥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또 하나 진기했던 경험은 바로 성심성의껏 응원에 열중하는 관객들이었다.

이전에 갔던 콘서트는 같은 가수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소속감과 유대감을 느끼게 했다면,
이번 공연은 가수 이승윤 한 번, 관객 팬들 한 번.
번갈아 관람하게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관객도 공연의 일부 같았다.

어머니 세대가 주인 팬클럽 회원들이 공연 중간중간 이벤트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귀여우면서 귀하고, 예뻐 보였다.


콘서트가 처음인 가수와, 인디 가수의 팬은 처음인듯해 보이는 그의 팬들은
공연을 "얼레벌레 우당탕탕 얼렁뚱땅 쿠아앙르르" 하게 보이게 했지만, 묘하게 조화로워서 재밌는 시간을 만들어갔다.


항상 소멸해 가는 시간, 역사에 남지 않는 노력 등에 귀 기울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가수인 이승윤은 이번 공연을 통해서도 잊히기에 더 가치 있는 관계를 선물해 주었다.

잊지 못할 공연이어서가 아니라 잊히는 공연이기에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승윤의 첫 콘서트를 볼 수 있어 영광이었다.

이번엔 조그만 라이브 카페의 공연을 큰 무대로 옮겼다면, 앞으로의 공연에선 어떤 형태로, 어떤 이야기를 담아갈까.

아무 계획이 없다는 가수의 말을 잘 듣고 조용히 오래 다음을 기다려 보아야겠다.

즐거운 도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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