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두산인문극장에서 '공정(Fairness)'을 주제로 공연, 전시, 강연 등 다양한 방식의 행사를 진행한다.
섞여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가 세대, 성별, 인종 등 근본적인 다름을 어떻게 '공정'으로 포용할 수 있을까?
그 안에서 일어나는 격렬한 움직임을 어떻게 미래를 향한 힘으로 다듬을 수 있을까?
'두산 인문극장 2022 : 공정'에서 이 질문들의 답을 찾을 수 있을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 본 강연 리뷰는 교수님의 강연 자료 및 요약 페이퍼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첫 번째 강연은 한국에서 경제학자로 저명하고 강의력 좋기로 유명한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최정규 교수님의 강연이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공정성을 이야기하는 말랑말랑한 사례로 강연이 시작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공정이라는 주제로 나오는 많은 진단들은 다음과 같다.
: 삐뚤어진 공정 / '절차적' 공정과 '실질적' 공정 / 공정이 아닌 연대와 평등 / 능력주의의 문제 / 공정은 엘리트의 구호일 뿐 등
-이러한 진단이 '공정함'을 바라는 사람들의 기저에 깔린 바람을 잘 보여주는가?
-어쩌면 바람을 제대로 된 언어로 표현해주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우리는 한 번씩 위와 같은 담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협력'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로 유명한 교수님은 협력을 바라보는 시각을 두 가지로 정의하였다.
1. 근대라는 프로젝트 : 자유와 양립하는 대규모 협력 / 인간 본성에 의존하지 않고 잘 작동하는 대규모 협력 체계로서의 사회
2. 공동체라는 염원 : 선한 본성, 양육 / 숨은 (잊힌) 본성에 가장 걸맞은 체계로서의 공동체 / 그 속에서 자아를 찾고 그 속에서 자아를 실현하도록 공동체 활성화 / 신자유주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인간 본성으로 회복
현재 우리는 1번의 시각으로 협력을 바라보는 이들이 많아졌고 특히 경제학자들이 연구하는 바도 근대라는 프로젝트에 해당한다.
이는 좋은 시민을 만들어 가는 것(혹은 선한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 보다 좋은 통치기구(제도/틀)를 더 중요시한다.
이들에겐 공정이란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마지막 보루이고 협력적 사회를 이루는 평등과 연대 등의 가치를 함께 추구하기 위한 전제조건에 해당하는 것이다.
교수님은 협력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이타성이 아닌 호혜성이라고 하셨다.
호혜성 : 서로 특별한 혜택을 주고받는 일 ('조건부' 이타성)
: 자신에게 이득을 준 상대에게 호의로, 피해를 준 상대에게 적의로 대응한다.
사람들의 행동과 의사결정 기준에 대한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강한 호혜성을 가진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1. 사람들은 손해가 되더라도 타인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성향이 있다.
2.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마찬가지의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는 경우에만 혹은 기대되는 경우에만 협력적 행동을 지속한다.
ex) 협력이 요구되는 실험에서 이전 기수의 협력률이 높았다는 결과값을 보여주면, 현재 기수들의 협력률도 높아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3. 협조는 조건부로 이루어진다. 타인이 어떻게 할 것인지의 기대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 전력을 아껴야 한다는 지침이 내려졌을 때, 우리 동네에서 가장 전력을 아끼고 있는 사람의 전력량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자신들도 아끼기 시작한다.
4. 피실험자들은 사회적 규범으로서 이탈하는 이들을 (자신에게) 비용이 들더라도 징계하려 하고 사회적 규범을 준수하는 이들을 (자신에게) 비용이 들더라도 포용하려는 성향을 가진다.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구성원들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 협력에 무임승차하려는 사람들을 극소화시켜야 한다. 무조건적인 협조적 태도나 이타적 성향만으로는 무임승차를 억제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의 협조적 태도가 조건부적이라면 협력하려는 이들과는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무임승차자에게는 협력적 태도를 철회할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무임승차자들로부터 보호하면서 집단 내 협력을 이루어내는데 기여하게 된다.
호혜적인 이들의 존재는 사회에서 협력을 유지하고 무임승차를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이러한 호혜성에도 당연히 어두운 측면이 있다.
강한 호혜성을 갖는 사람들은 내부인에게는 협력적인 반면 외부인에 대해서는 협력적 성향에 대한 의심 때문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곤 한다. 때때로 강한 호혜성은 다른 인종, 종교, 민족에 대한 혐오나 사회에서 억압받고 소외된 계층에 대한 혐오와 배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호혜성이 편견과 만날 때 (아와 타 구분이 매우 자의적이고 기준이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배척과 혐오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어딘가에, 누군가가 자신보다 더 어렵지도 않으면서 자신이 기여하고 협력해서 얻어진 성과물을 가로챌 수도 있다는 두려움 (경험에서 기인하거나 편견에서 온)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교수님은 말씀하신다.
Parochial Altruism(자기 집단중심적 이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잘못된 기준을 바로잡아주고 편견에 대해서 지적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공정 관념 기저에는 호혜성과 응분이라는 두 원칙이 있다.
공정은 내가 몸담고 사는 사회가 협력적 체계임을 확신하게 해 주는 전제 조건이다. 이러한 조건은 사회 구성원들이 협력적 기획에 참여할 것이고, 참여한 사람들은 그러한 참여로부터 응당 받아야 할 몫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때 충족될 수 있다.
타인도 나와 다를 바 없으며 내가 그러한 것처럼 타인도 사회의 협력적 기획에 기꺼이 참여할 주체임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런 확신을 갖게 만드는 것, 그럴 수 있도록 타 집단에 대한 편견을 없애 주는 것, 그것이 협력적 사회를 위한 토대가 될 것이다.
공정이란 무엇인가?
공정은 '내가 몸담고 사는 사회가 협력적 체계임을 확신하게 해 주는 전제 조건'이다.
협력을 이루게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선한 본성이니, 이타성이 아닌 호혜성 (잘해주면 나도, 못 해주면 나도)이고 이는 응분이 있어야 한다.
강한 호혜성이 편견과 만날 때 배척과 혐오의 잣대가 될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무임승차자들을 줄이기 위해서는 나를 비롯한 남들도 사회의 협력적 기획에 기꺼이 참여하는 사람들이다는 믿음이 필요할 것이다.
한 번도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공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교수님의 강연이 매우 인상 깊었고 재밌었다.
막연히 이타성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호혜적인 마음을 이용하여 협력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 하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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