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강연 리뷰는 교수님의 강연 자료 및 요약 페이퍼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세 번째 강연의 주제는 <공정의 역습 - 우리 시대 청년들의 '공정'>이었다.
강연자는 기자이신 천관율 에디터님이셨다. 본인을 '장사꾼'이라고 하며 깊은 연구를 하는 다른 강연자 님들과 달리 자신은 이들의 깊은 작업물을 모아서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본격적인 강연의 도입은 '일베 사이트'에 대한 연구 자료로 시작했다. 일베 사이트 유저들이 가지는 반사회성이 어떻게 이들의 자부심 원천이 되었는가에 대한 고찰에서 우리는 '무임승차 응징'이라는 도덕 감정을 주목했다.
* 유의할 점은 일베 유저들이 우리 세대의 대표자가 아닌 잘못된 공정 감각(공정의 역습)에서 나오는 뿌리 중 하나라는 것
무임승차를 방치하면 공동체를 위해 협력하는 사람이 줄어들어 사회 구조가 위태로워진다.
무임승차 응징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정의로운 분노'이자 인간의 보편 정서이다. 기여하는 만큼 받아가야 한다는 원리, 기여한 게 적은데도 더 많이 받아가는 무임승차는 단죄해야 한다는 요구. 오늘날 청년 세대가 보여주는 공정 감각은 여기에 뿌리를 뒀다.
강연자 님은 공정 감각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1. 공정의 원칙 : 경쟁의 결과를 개입하는 반칙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다.
2. 공정의 역습 : 경쟁의 결과에 개입하는 것은 반칙과 특권이므로 용납하지 않는다.
위 두 개념은 매우 비슷해 보이지만 해석하면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된다.
공정의 원칙(1)은 반칙과 특권을 사안별로 판단하지만, 공정의 역습(2)은 경쟁의 결과에 개입하는 '모든 시도'를 용납하지 않는다.
1. 공정의 원칙 : '경쟁 바깥 환경에서 오는 반칙과 특권'을 몰아내자고 주장하는가?
>> '경쟁 바깥 환경의 불균형 문제'를 인식하고 그 구조적 불리함을 보정해 주는 길이 있다. 공정의 원칙은 더 이상 간결하지도 보편적이지도 않다.
2. 공정의 역습 : '경쟁 바깥 환경 전체'를 몰아내자고 주장하는가?
>> '경쟁 바깥 환경의 불균형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하는 길이 있다. 이는 간결하고 보편적인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예시) 우리 사회에는 여성할당제, 장애인 정책. 청년 정책이 있다.
1. 공정의 원칙 : 위의 제도가 반칙과 특권인가 / 소수자 권리 옹호인가/ 등 공적 토론과 합의를 요구하며 공론장과 민주주의를 인정한다. 이는 맥락에 대한 사려 깊음을 고려한다.
2. 공정의 역습 : 위의 제도는 공정의 결과에 개입하는 반칙과 특권이다, 라는 하나의 정답으로 접근하여 공론장과 민주주의를 제거하여 맥락에 대한 사려를 시도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공정의 역습은 '경쟁 바깥 환경의 불균형 문제는 없다'라고 주장하고 다음과 같이 그저 '선택'했다고 본다.
ex) 여성이 공부가 쉬운 문과를 '선택' / 위험하지 않은 일을 '선택' / 일 대신 육아를 '선택'
따라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것이다. 즉, 여성은 무임승차자이기에 여성할당제는 반칙과 특권에 해당하게 된다.
우리는 '무임승차자를 응징'해야 하는 당연한 도덕적 감정을 지녔으니 이들을 응징해야 한다는 일베 사고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연대의 원리에서 약자는 위험에 '먼저 당첨된 사람'이다. 그게 나였을 수도 있다. 따라서 약자는 연대의 원리 안에서 더 많은 자원을 가져갈 명분이 생긴다. 그게 나 자신을 미래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정의 역습에서 약자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경쟁 바깥 환경'에 불균형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시) 인간은 누구나 장애라는 위험에 '당첨'될 수 있다. 장애인 이동권을 지지하는 것은 연대의 원리에서 작용하는 것이지, 비장애인의 자선이나 시혜가 되면 안 된다.
인생은 불확실하고 위험 총합은 줄일 수 없지만, 위험을 감당하는 방식은 바꿀 수 있다. 위험을 분산하면 모두가 감당 가능한 것이다.
공정의 원칙(1)이 연대의 원리를 인정한다면, 공정의 역습(2)은 연대의 원리를 공격하는 것이다.
공정의 역습이 왜 우리 시대에 두드러지는 것일까?
'좋은 삶'은 사회적 관계, 우정, 상호성에 달려 있기에 타인이 있어야 도달 가능한 목표이다. 타인은 본질상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 경제사상가 루이지노 브루니는 근대성의 핵심 특징을 '면역화(관계로부터 면역) 프로젝트'라고 불렀다.
" '좋은 삶'에는 타인이 묻어 들어올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취약함'을 받아 들어야만 '좋은 삶'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근대성이란 구체적인 타인을 추상적인 보편 원리로 바꿔서 이 '취약함'을 제거하려 했던 프로젝트였다."
공정의 역습의 [그 누구도 특별대우를 하지 않는 공정한 규칙이 있을 것. 모두에게 경쟁에 참여할 권리가 보장될 것. 그렇게 나온 경쟁의 결과대로 보상이 돌아갈 것]이라는 개념은 구체적인 타인을 추상적인 보편 원리로 대체하는 시도이고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즉, 공정의 역습은 브루니 말을 빌러 '근대성에 내재한 면역화 프로젝트'가 승리를 거두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타인이 주는 '취약함'으로부터 '면역'을 얻겠다는 태도는
: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 때문에 홍콩 공항에서 발이 묶인 일본인 관광객이
"홍콩 시위는 지지하지만,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은 조금 곤란하다고 생각한다."라는 인터뷰
: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있는 한국 지하철에서 출근을 하는 시민이
"장애인 이동권에 찬성하지만, 그들이 나의 출근을 방해할 권리는 없다"라고 하는 인터뷰
위의 주장과 같은 태도로 나타나게 된다.
강연자 님이 내세운 '공정의 역습'이라는 개념은 현 사회의 모습을 잘 반영한 설득력 높은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대체 여기서 말하는 공정이 뭐야?!"라는 답답한 질문을
'무임승차 응징'이라는 보편 정서에서 출발해서 미국 정치의 '복지 여왕' 개념, 유럽에서 시작한 연대의 원리인 '로도스 법' , 고대 철학의 '좋은 삶', 그리고 이탈리아 사상가의 '근대의 면역화 프로젝트' 개념까지.
시대, 국가를 막론한 깊은 자료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타인을 제외하는 잔인한 공정의 역습에 대한 강연을 인상 깊게 들었다.
건강한 공정의 원칙을 발현할 수 있는 '공론장'이 현재 한국에는 없다는 질문에 강연자 님은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우리는 지금껏 미국과 일본 같은 대국의 행로를 따라왔다면 이제는 더 이상 참고할 모델이 없어 한국이 직접 나아가야 하는 기로에 섰다. 특히 공적 토론과 합의를 위한 공간이 부재했던 우리나라에 공론장이 시급하다."
적어도 어제 강연은 우리 청년들에게 좋은 '공론장'의 시작이었다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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