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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

* 지극히 주관적인 전시 후기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4월 17일까지 열리는 전시를 보고왔다. 아이 웨이웨이가 작가의 이름인지도 몰랐던 상태로 입장한 전시에서 첫 그림부터 이목이 집중되었다. 전 세계의 명소, 유명한 공간에 중지를 떡하니 올려둔 사진들인 는 이 작가의 심상치 않음을 처음부터 보여준다. 권위적 공간에 대해 비웃는듯한 그의 손가락 욕이 개인의 자유로운 표현을 아낌없이 느끼게 한다. 쓰촨성 대지진 당시 아이 웨이웨이가 시민 조산단과 활동을 했던 블로그가 중국 정부에 폐쇄 당하고, 재판에서 경찰에게 연행되기 직전 기록한 은 부당한 상황을 생생하게 기록하여 보는이로 하여금 그의 상황을 강렬하게 인식할 수 있게 한다. 내 목소리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내가 문장을 만들 때마다, 얼마나 오랫동안..

B급 취향, 포항

포항에 이제 갈 일이 없어져 아쉬움에 쓰는 책방 겸 카페 리뷰 언제부터인가 독립 서점과 커피를 함께 파는 카페 형태가 많아졌다. 책은 구입 후 독서가 가능하고 책방이라는 분위기에 맞게 조용한 손님들이 주로 방문하는 것 같다. 좋은 공간 서칭에 특화되어 있는 언니 덕에 포항에 와서 굉장히 마음에 드는 공간을 발견했다. 수제 비건 디저트를 팔고, 키즈존이며 내가 좋아하는 책이 가득한 곳이었다. 아주 조그만 크기의 앤티크한 공간을 상상했는데 생각보다 외관이 넓고 모던한 느낌이 물씬 났다. 맛있어 보이는 디저트들이 카페 중간에 진열되어 있었다. 너무 달지 않는 담백한 디저트류를 좋아하는 나에겐 환상의 메뉴들이었다. 내부 또한 나의 예상보다 훨씬 넓어 답답하지 않았다. 이전에 업로드한 포항의 '오후애' 카페와 마..

오후애(ohooae), 포항

언니가 포항에 살아 자주는 아니더라도 종종 포항에 갈 일이 생긴다. 포항에도 있을 건 다 있지만, 확실히 광역시와는 달리 맛집과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 특히 언니의 집이 영일대 해수욕장 앞이라 관광지 카페들이 즐비되어 있어 크기는 크지만 딱히 발길을 끄는 곳은 없었다. 1년 동안 포항살이를 하던 언니가 드디어 자기 취향인 카페를 발견하여 단골이 된 카페를 소개해 주었다. 영일대 해수욕장 끝 쯤에 위치하여 주위가 소란스럽지 않아서 좋았다. 특히 오후애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케이크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카페에 15개 종류의 케이크가 있다는 게 놀라웠고 모든 케이크가 가지각색의 개성을 가지고 있어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보통 내가 좋아하는 카페는 좁은 공간이 특징인데 '오후..

시게야(sigeya), 대구

* 가게 리뉴얼 전 사진 첨부 딱 1년 전, 추운 겨울 따뜻한 음식을 먹자는 친구의 부름에 대구 종로에 갔다. 일본 거리에 있는 동네 술집 같은 가게 외부는 정말 예뻤다. 밖에서 보았을 때 가게가 작고 조용해서 안이 궁금했다. 한 줄로 늘어서 있는 바형 테이블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먹고 있었다. 추운 바깥 날씨와 대비돼서 그런지 실내가 더 포근하고 아늑했다. 첫 안주로 따뜻한 국물이 있는 어묵탕을 주문하고 나는 하이볼을, 친구는 맥주를 한 잔 시켜 마셨다. 우리가 흔히 먹는 한국의 어묵탕과 달리 시게야에서 판매하는 일본식 어묵탕은 어묵 자체에 더 신경을 쓴 것 같아 깔끔하며 담백했다. 그때 당시엔 좁은 공간 탓에 한 테이블당 2시간이라는 제한이 있었는데 리뉴얼된 이후는..

뻐꾸기(bbukkuki), 대구

맥주를 파는 곳은 많다. 쉽게 먹을 수 있는 술일뿐더러 어떤 안주와도 잘 어울리기에 그만큼 다양한 가게가 있다. 하지만 같이 먹는 안주가 맛있어서 맥주를 더 시키게 되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분위기가 좋아서, 목이 말라서가 아니라 안주를 먹다 보니 맥주를 더 시켜서 먹게 된 곳은 대구 교동에 위치한 뻐꾸기가 처음이었다. 공간은 작지만 답답한 느낌은 없고 일본식 맥주집이지만 특유의 교동의 분위기가 어울려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지인의 단골 가게여서 따라가 처음으로 시킨 음식은 '뻐꾸기 함박'이었다. 평소 함박스테이크를 즐겨 먹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짭조름하면서 감칠맛 나는 맛이 안주로 딱 좋았다. 안주 자체가 양이 많은 편이 아니어서 한 두개씩 시켜 맛보기에 알맞다. 뻐꾸기 생맥도 추가하며 도전해본 햄카츠..

심신 단련(이슬아 산문집)

회사에서 짬 날 때마다 전자책으로 이슬아 작가님의 [심신 단련]을 읽었고 지난 주말 수원에 가는 기차 안에서 [깨끗한 존경]을 읽었다. 1주일 만에 이슬아 작가님의 책을 두 권이나 읽을 수 있었던 건 그만큼 그녀의 책이 재밌었고 쉽게 읽히지만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의 시즌 투 버전인 이 책 또한 수수하지만 톡톡 튀는 작가님의 글솜씨가 돋보였다. 어떻게 일기같이 슥슥쓰는데 다양한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통찰하지? 사람에 대해, 사물에 대해, 하물며 자기 자신에 대해 고찰하는 깊이가 남달라서 너무 좋다. 이미지 하나 없는 글인데도 세련됨이 느껴진다. "계속해서 겸손하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싶어 진다. 내가 모르는 것과 배워야 할 것이 세상천지에 널려있으니까. 편견도..

오래 준비해온 대답 (김영하)

반납 도서에 얹어져 있던 책이었다. 표지가 예뻐서 집어 들었다가 김영하 작가님의 이번 연도 신간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누가 뺏어가기 전에 얼른 대출을 했다. 작년에 재밌게 읽었던 '여행의 이유' 다음으로 오랜만에 작가님의 책을 읽게 되어 신났다. 소설가이지만 작가님의 산문집을 더 좋아하는 독자로서 여행기를 담은 이 산문집도 궁금했다. '시칠리아'는 사실 처음 들어 본 섬이였다. 이름 자체도 생소한데 이탈리아라니. 전혀 알지 못하는 섬을 이렇게나 가고 싶게 만들다니.. 특히 지중해에는 꼭 가보고 싶어 그리스 여행을 꿈꾸었던 나에게 시칠리아는 더 매력적으로 그려졌다. 삶이 지루해질 때 여행을 꿈꾸면 다시 삶에 애정이 생긴다. 아직 모르는 세상이 이렇게나 많은데.. 만날 사람들이 넘치고 넘쳤는데..라는 생각을..

독서의 취향 (프롤로그)

독서와 글쓰기는 오랜 나의 취미이다. 대학생이 된 이후부터 책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고 휴학 시절을 시작으로 완전히 취미로 자리 잡았다. 책만 읽어서는 내용이 빨리 휘발된다는 것을 느껴 블로그에 기록을 해오던 게 차곡차곡 모여 어느새 네이버 블로그에는 책 리뷰만 168건이 넘게 되었다. 책은 나에게 오락이자 피난처이다. 영화로, 유튜브로 채워지지 않는 재미는 무조건 책에서 찾는다.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주기도 하고 SF라는 장르는 상상의 폭을 자유자재로 넓혀준다. 박완서 작가님의 소설을 읽을 때면 한국문학의 아름다운 표현에 놀라워하고 알랭 드 보통 책을 읽을 때면 날카로운 분석력에 무릎을 치기도 한다. 감정이 가라앉아 우울감으로 허덕일 때는 인공호흡기로 책을 찾는다. 놀랍게도 소설이든 에세이든 그 시기의 나..

비포 선셋 (Before Sunset)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던 휴학 시절, 영화 볼 시간이 많았다. 당시에 넷플릭스에 비포 시리즈가 다 들어와 있어서 하루에 한 편씩 선라이즈, 선셋, 미드나잇을 보았다. 그때는 설레고 낭만적인 선라이즈가 가장 기억에 남았었다. 줄리 델피가 황금빛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기차에서 책을 읽는 장면이 너무 예뻐 배경화면도 해두었었다. 어리고 활기찼던 미국 남자 제시와 프랑스 여자 셀린의 로맨틱한 운명은 6개월 후의 만남을 기약하며 막을 내렸다. 그로 9년 후, 프랑스 파리에서 이들은 재회한다. 사실 강렬했던 선라이즈와 현실감 넘쳤던 미드나잇 사이에 있던 선셋은 처음 봤을 당시에 인상 깊지는 않았다. 요즘 관심사가 프랑스에 있어서 이것저것을 찾아보다 불현듯 프랑스 파리가 배경이었던 이 영화가 생각이 났고 금요일 밤에 다..

라라랜드 (La La land)

한 영화를 여러 번 보는 스타일은 정말 아니다. 하지만 라라랜드는 적어도 세 번 이상은 봤던 것 같다. 처음 개봉했을 땐 갓 20살이 끝나가는 시점이어서 내용에 완전한 공감은 하지 못하였지만 이상하게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정확히 기억나는 건 처음 봤던 당시에도 나는 이 영화가 마냥 인물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미아와 세바스찬의 사랑의 끝이 결혼이라는 상투적인 결말이었다면 여운이 남진 않았을 거다. 사랑보단 꿈, 관계보단 개인에 집중하게 되는 매력적인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시간이 지나 이동진 평론가님의 영화평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본 라라랜드는 또 새로웠다.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은 각자의 홀로서기를 돕는 사랑이고,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둘보다 하나인 게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