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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취향 (프롤로그)

취향을 이야기할 때 영화는 빠질 수 없다. 종종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열거하면 누군가는 '로맨틱' 영화를 좋아하는구나, '드라마' 장르만 보는구나, 하고 뭉뚱그려 표현하곤 한다. 그리고는 영화의 예술성을 잘 모르는 대중적인 사람으로 단정 짓는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대중성과 예술성은 무엇이고, 어떤 기준으로 나누어지는 걸까? 나아가 취향에 있어 다수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르를 선호하면 자기만의 취향이 뚜렷이 없는 사람이 되는 걸까? 하지만 같은 영화를 봐도 사람에 따라 꽂히는 장면, 느끼는 바, 깨달은 점은 무수히 다양하다. 고로 단순히 영화 취향을 '로맨틱', '스릴러' 등으로 국한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다. 우리가 처음 만난 사람과 쉽게 이야기 물꼬를 틀 수 있는 주제 중 단연 편한 건 영화 이야기다...

훼이보릿(favorite coffee), 광주

좋아하는 공간을 정리하다 보니 새삼 '따뜻한' 분위기가 나는 곳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아! 이게 내 취향이구나를 느끼고 있다. 언제부터 나만의 카페 취향이 생겼지를 회상하다 보니 광주 전남대 앞의 '훼이보릿 커피'가 생각났다. 2018년, 20대 초반만 해도 나는 돈을 쓸 줄 모르는 학생이었다. 공부는 도서관, 음료는 물로 카페는 친구들을 만날 때만 잠깐 가는 그런 곳이었다. 처음으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행복한 거구 나를 느낀 공간이 바로 훼이보릿 카페였다. 처음엔 스콘이 맛있어서 친구랑 들리다가, 과제를 하러 가다가, 나중엔 일정이 없을 때면 책과 일기장을 들고 혼자 가기 시작했다. 연고 없는 곳에서 4개월간 사는 동안 훼이보릿 카페는 나의 방이었고 나의 안식처였다. 조용히 취미생활을 즐..

목로(Cafe mokro), 대구

대학교 앞에는 카페가 매우 많다. 물론 위치상 커피를 마시러 가는 공간이라기보단, 두 가지의 특징의 가진 카페들이 많다. 1. 공부하러 가는 스터디 카페 2. 테이크아웃을 전문으로 하는 프랜차이즈 카페 스터디 카페 분위기를 띠는 곳인 경우, 넓고 쾌적하고 개인 업무를 볼 때는 좋지만 커피의 맛과 공간의 행복보단 얼마나 오래 머무르기에 적합한지를 기준으로 가게 된다. 테이크아웃을 전문으로 하는 카페인 경우, 가격이 저렴해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지만 공간에 머무르거나 커피 맛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동안 학교 앞에 좋아하는 카페야!라고 소개할 수 있었던 곳이 없었는데 드디어 생겼다. 크기가 매우 작아 주로 고객들은 테이크아웃을 목적으로 간다. 앉을 자리도 조금은 있어 친구와 나는 틈이 날 때마다 1시간 정..

브라운 슈가 (Brown Sugar), 대구

카페는 그냥 친구 만나는 곳, 공부하러 가는 곳, 기프트콘을 쓰러 가는 곳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나의 관점을 바꿔준 친구가 있다. 진지하게 커피를 음미하고 누구보다 카페가 주는 공간을 잘 즐기는 그런 친구이다. 우리의 첫 만남에서 친구가 아무나 데리고 가지 않는 자신의 단골 카페를 소개해주었다. 핫플레이스의 카페라기보단 동네 커피집이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 곳 같았던 이곳이 바로 브라운 슈가였다. 어떤 단어보다 '편안함', '아늑함'을 좋아하는 나에게 낯설지 않고 안락한 기분을 주는 브라운 슈가의 첫인상은 따뜻했다. 기본 아메리카노는 산뜻한 맛이 나서 개인적인 취향에 잘 맞았고, 디저트도 일품이었다. 첫 방문 이후 자주 들리게 되었다. 대구의 시내라고는 할 수 없는 조금 거리가 있는 대봉동에 위..

미엘레종(miellaison), 대구

수많은 카페가 있지만 내 마음에 드는 단골 카페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공간, 맛뿐만 아니라 적당한 사람들로 인한 너무 소란스럽지 않은 분위기가 필요한데 어려운 조건이다. 사람들이 몰리는 순간 여유로움을 느끼고 싶어 방문한 카페는 얼른 자리를 피해주어야 하는 전시장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가장 번잡하기로 유명한 대구 동성로 무대 근처 골목에 유유히 한적함을 유지하는 한 카페가 있다. 구운과자를 굽고 핸드 드립을 내리며 공부하는 사람들과 수다를 떠는 사람들의 비율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곳인, 미엘레종이다. 깔끔한 인테리어에 곳곳의 식물들이 배치되어 평화로운 느낌을 연출해준다. 개인적인 취향과도 맞는 음악이 흘러나와 여러모로 다 마음에 드는 카페이다. 커피도 맛있지만 이 카페엔 구운과자를 먹으러 수없이 방..

도미(Domi), 경주

진토닉은 진 기반의 칵테일이다. 후추와 오이가 들어간 진토닉을 맛보았다. 정확한 술 명칭은 잘 생각이 안 난다. 진토닉을 마셨던 가게인 도미는 테라스가 매력적인 조그만 카페이자 펍이었다. 오픈 주방으로 가족이 함께 운영하고 경주 주민들에게도 인기인 듯 지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것 같아 보였다. 큰 오븐으로 화덕피자를 주로 굽고 샥슈카(에그 인 헬)로 유명한 집이었지만, 우린 올리브 요리를 먹었다. 화덕에 구워서 함께 나온 빵이 일품이었다. 공갈빵 느낌에 인도 음식의 난 같아 보이기도 했다. 겉은 바삭하고 담백한 맛이 나서 잘게 자른 올리브와 함께 곁들이니 조화로웠다. 가벼운 디쉬와 진토닉 한 잔은 경주의 분위기를 한껏 더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채광마저 인테리어였던 도미의 겨울도 궁금해진다. 다음에 방문..

커피 플레이스 (Coffee Place), 경주

경주는 어느 계절에 가도 평화롭고 예쁘다. 물론, 주말만 제외하면. 개인적으로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하는 대릉원 쪽 보단 맞은 편에 있는 고분군 쪽에서 노는 게 사람도 적고 좋다. 고분군 맞은편에는 조그만 카페가 있는데 맛이 좋아 유명하다. 잘 내린 핸드드립 집은 다 아는 지인의 가장 좋아하는 카페이기도 하다. 크기는 크지 않지만 커피를 즐기기엔 딱 적당한 공간이다. 창 너머로 보이는 능과 햇빛이 들어와 따뜻한 느낌을 자아내는 분위기가 공간의 행복함을 선물한다. 오늘의 커피 (필터 커피)를 한 잔 마셨다. 한 모금에 산뜻함과 적당한 무게감을 느낄 수 있어서 풍부한 맛을 내는 커피였다. 커피를 오랫동안 많이 마셔 본 친구가 맛있다고 하는 커피는 맛있다. 가끔은 진짜 내가 맛있는 맛을 느낀 건지, 아님 친구의..

오아시스(Oasis), 경주

황리단길 뒷길을 이용해서 찾아간 곳은 친구의 추천인 와인바였다. 심플한 외관이 마음에 들었다. 인테리어가 보이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어떤 느낌일지는 예상이 되었다. 오플 할 때 맞추어 가서 그런지 사람은 없었고 조용하면서도 분위기에 맞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모든 테이블에 사람들이 앉았고 혼자 온 손님도 있어 눈길이 갔다. 언젠가 홀로 여행을 온다면 나도 들리고 싶은 공간이었다. 직원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 가볍고 산뜻한 화이트 와인 한 잔을 주문했다. 다음에 간다면 와인 종류를 알아서 외워두어야겠다. 취향을 찾기 위해선 공부가 필요하니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질문을 해야겠다. 여름 시즌 메뉴였던 걸로 기억난다. 인터넷에서 메뉴판을 찾아 이름을 적으려 해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구운가지, ..

커피와 술 (프롤로그)

한 나라의 경제 수준이 어느 정도 도달하면 사람들이 커피를 즐긴다. 그리고 조금 더 높아지면 와인을 마신다고 한다. 이에 따른 정확한 근거 사례를 보고 싶었지만, 찾지 못했다. 어쨌든 최근 들어 와인 바가 많아지는 것을 보니 사회적 근거는 없어도 체감상, 느낌상은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분위기'는 공간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어쩔땐 공간이 주는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카페와 와인바 혹은 칵테일 펍을 찾아가는 것 같다. 더 이상 커피와 술은 마실 것에서 그치지 않고 문화를 '향유'하는 매체물이 된 듯하다. 소비를 위한 방문이 아닌 낭만을 느끼기 위한 공간을 찾고 싶다. 그리고 커피와 술에 있어 나만의 취향을 가지고 싶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즐기는지 아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커피 ..